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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화가 부모의 결혼 생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후회막심했던 과거! 네티즌들에게 충격과 배신을 안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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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1991 2021. 7. 1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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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화가 부모의 결혼 생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후회막심했던 과거! 네티즌들에게 충격과 배신을 안겨준...!

사람이 좋다' 신성일 엄앵란 부부의 막내딸 강수화가 부모의 결혼 생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20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이하 사람이 좋다)'에서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특별한 부녀의 이야기, 그리고 엄앵란과의 부부 이야기' 편이 전파를 탔다.

 

이날 강수화는 "1960년대 대한민국이 들썩하도록 부모님이 연애했단다. 사랑했으니까 자식이 3명이나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50여 년의 결혼 생활을 순탄치 못했다. 결혼생활 절반을 넘게 별거 부부로 살았기 때문.

 

이어 "실컷 놀다가 엄마가 유방암에 걸리니까 집에 들어오겠다는 거다. 못 들어오게 하면 서운해할 테고 같이 살면 몇십 년을 떨어져 살았는데 갑자기 어떻게 살겠냐. 생활 패턴이 전혀 다르다"며 "아버지는 6시에 아침 식사를 한다. 어머니는 12시에 아점(아침·점심)을 드신다. 어머니는 젓갈류를 좋아하는데 아버지는 심심하게 건강에 좋은 음식을 드신다. 어머니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 아버지가 스킨쉽 하는 것도 싫어하신다. 반면 아버지는 스킨십을 아주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강수화는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자꾸 애인 이야기를 하고 언론에서도 말 안 해도 될 것을 말하더라. 자서전 썼을 때도 인터뷰를 과거 이야기만 빼고 하라고 했는데 앞뒤 다 빼고 그 인터뷰만 나간 거다. 어머니와 나는 3개월간 밖에 못 나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부모님께 아버지에게 애인이 있는데 왜 어머니와 서류상은 그냥 놔두냐면서 깔끔하게 이혼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배우들이 몇 개월 못 살고 이혼하는 선배들을 봤기 때문에 그런 딴따라의 이미지를 깨겠다, 죽어도 가정은 지켜야 한다더라. 아버지는 이혼하고 싶었을 때의 시기가 넘었다더라. 어머니와는 가치관이 틀려서 말이 안 통한다더라.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사람과 연애를 해야겠다더라"라며 "자식도 있고 생각해 보니 둘이 안 맞고 아버지는 건강하고 어머니는 배타적이니까 아버지도 외로웠겠구나 싶더라"고 털어놨다.

 

배우 신성일은 본명이 강신영, 1937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등학교 건국대학교를 나왔습니다. 영화 배우 당뷔 당시 신상옥 감독의 추천으로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쓰게 된 것이며, 그 외 '강신성일'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있습니다. 

 

강신성일이라는 이름은 1996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아예 이름 자체를 강신성일로 개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본명은 강신성일입니다. 선거에서는 본명을 써야 하는데 과거 1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시 본명 강신영으로 나갔더니 배우 신성일인지 몰라서 득표에서 큰 손해를 봤다는게 개명의 이유였다고 하네요.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 신성일은 영화 '맨발의 청춘'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동료 배우 엄앵란과 1964년 서울 모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당시에는 스타들이 비공개 결혼식 이런 풍토는 없었던지라, 엄앵란의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배우였음에도, 신성일이라는 이름만으로, 유명 연예인, 기자, 일반인 등 무려 4,000명 이상의 하객이 몰리는 최고의 결혼식으로 유명했습니다. 

 

결혼식에 들어가려는 일반인들이 결혼식 입장표를 암거래하는가 하면, 결혼식을 보지 못 한 사람들이 호텔 앞에서 호텔 측에 거세게 항의를 하며 시위를 벌이는 등 현재까지도 한국 스타 결혼식으로는 최고의 '세기의 결혼식'으로 남아있는 장면입니다. 

 

신성일의 정치 도전, 그러나 후회막심했던 과거

 

배우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보낸 신성일은 이후 정치 도전에 나서게 됩니다. 신성일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되며 정치 입문을 햇고, 위의 이름을 말할 때도 잠시 거론했듯 신성일은 강신영이라는 본명으로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합니다. 강신영이라는 본명을 쓰니까 배우 신성일인줄 못 알아봐 표가 많이 깎였다는 분석도 이래서 나온 것입니다. 

 

이후 신성일은 자신의 본명과 예명을 혼합해 만든 강신성일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한나라당 총재특보를 지내게 됩니다만, 그러나 17대 때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다 포기하게 되는데, 이때 불거진 사건이 바로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광고로비 사건입니다. 

 

신성일은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광고로비 사건이 불거지며 당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 공천을 받지 못하는데, 결국 신성일은 이 일로 2005년 2월 뇌물수수죄로 구속되어, 징역 5년과 추징금 1억 8,700만 원을 선고받고 2년여를 복역한 뒤 출소하게 됩니다. 

 

신성일은 그런 정치 생활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영화배우의 인기에다 권력의 날개를 하나 더 다는 셈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며,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축됐다며, 정치는 자신의 생리에 맞지 않았다며 정치활동을 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고(故) 김영애 아나운서와의 관계

 

신성일은 2011년 출간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를 통해 과거 고(故) 김영애 아나운서와의 관계를 털어놓아 네티즌들에게 충격과 배신을 안겨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신성일은 "톱스타 신성일이 100명이 넘는 여배우와 영화를 찍었는데 스캔들이 없다 애인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나는 그런 위선, 그런 거짓말 못한다"는 논리 아래 바람을 피웠던 사실을 공개했고, 심지어 자서전에 아내 엄앵란도 모르는 사진이라며 고 김영애 아나운서의 비키니 사진을 공개해서 큰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고 김영애 아나운서는 과거 동아방송 아나운서로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 재원으로, 1985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신성일과는 1970년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얼마전 사망한 배우 김영애 씨가 아닙니다. 헷갈리지 말아주세요)

 

근데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서전에서 신성일이 고 김영애 아나운서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갖고, 낙태를 했다는 말까지 세세하게 털어놓았고, 그리고 발언 당시 엄연한 결혼 상태임에도, 고 김영애 아나운서를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자신은 결혼 이후에도 애인이 항상 있었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이건 뭐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생활 이상가는 발언이라 충격은 더욱 컸는데요. 

 

그런 신성일의 발언에 네티즌들은 망자의 허락도 없이 죽은 애인을 자서전 판매에 동원한 노이즈 마케팅, 추억팔이라며 큰 비난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 중에도 신성일이 부인 엄앵란을 두고 애인이 있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살았던 이유는 바로 신성일 엄앵란 두 사람의 결혼 생활 55년 중 45년은 이미 이혼을 하지 않고 따로 살아온 졸혼 생활이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성일과 엄앵란은 50년이 넘은 결혼기간 중 별거한 기간만 45년인데, 엄앵란은 신성일이 자신과 살면서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절대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으며, 신성일 역시 이혼할 생각이 없으며, 이렇게 떨어져 지내며 과거 함께 지냈던 추억이 생각나 더 애큿해진다며, 사랑하면 다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고 다툼도 없다며, 떨어져 지내는게 좋다, 졸혼이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따지고 보면 졸혼도 내가 제일 먼저였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엄앵란 유방암, 신성일 폐암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두 분이 지금 현재 졸혼 상태, 그것도 40년이 넘게 떨어져 살았지만, 신성일의 말따라 떨어져 지내서 오히려 더욱 애틋하고 용서가 되고 이해하는 관계가 되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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