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사별 후 이숙은 재혼하지 않고,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킵니다.
이숙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TV에서 한 번쯤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숙은 전원일기에서 쌍봉댁으로 유명했지요.
이숙 나이는 1956년 3월 27일생으로 한국나이 59세입니다.(이숙 나이) 꽤 나이가 있어보이는데요. 이숙 데뷔는 1976년 MBC 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했지요. 이숙 학력은 이리여자고등학교, 명지대학교 행정학 출신이며, 이숙 고향은 전라북도 김제시입니다. 이숙은 배우로 데뷔하기 전에 1973년 CBS 성우로 데뷔를 했습니다. 이숙 소속사는 현재 DBC엔터테인먼트이지요.
이숙 이혼, 이숙 재혼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이숙이 싱글이기 때문에 이혼을 했거나 재혼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숙은 이혼이나 재혼과는 전혀 연관이 없으며, 결혼을 한 번 하였고, 남편과 사별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한 방송에서 이숙은 과거사진도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숙은 지금과 전혀 다른 우아하고 예쁜 모습으로 화제가 되었지요. 이숙이 맡은 배역 때문에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그녀 역시 예쁜 여성이었습니다. 과거 이숙은 명동에 나가면 자신을 외국인으로 알았다며, 그 때는 지금보다 피부도 까매서 이국적인 느낌이었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숙 결혼과 사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이숙 남편은 이숙과 결혼과 동시에 정치판에 발을 들였다고 합니다. 이숙은 약 16년전 그러니까 1998년 즈음에 남편과 사별을 했는데요. 남편과 사별 후 큰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하지요.
<이별로 갖고 사는 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타인은 감히 짐작도 못한다>고 고백을 했지요. 인생에서 정말 가장 큰 스트레스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거다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숙은 남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다며 자신의 소신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숙 남편 정치인 출신
이숙은 과거 SBS 자기야에 출연을 하여 사별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숙 남편 직업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요. <우리 남편은 정치하던 사람이다. 88년 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송파구 지역구 공천을 받아 한 달 만에 선거를 치렀는데 낙선했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어서 <중앙당 사뭄부총장, 지역구 관리도 하고 술자리도 많아지면서 동분서주 하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혈압이 높아져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 때 내가 40대 초반이었는데 두 아이를 남겨놓고 갔다. 두 아이와 전쟁을 치르며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털어놓았지요.
그리고 이숙은 최불암과 있었던 일화도 공개했습니다. 이숙 남편이 사망을 했을 당시 최불암이 문상을 왔다고 합니다. 전원일기로 최불암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최불암 선생님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문상 왔다. 그 배지가 부러워 배지 좀 잠깐만 빌려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빼줬다. 그걸 영정에 놓고 하늘나라에 가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돼 꿈을 이루라고 말했다>고 상을 치르면서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했지요.
이숙은 다시 최불암 선생님에게 금배지(국회의원 배지)를 드리니까 안 받았다. 입관을 할 때 관에 넣었는데 6개월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실례를 한 것 같았다며, 그 때 정말 배지 감사했습니다.라고 최불암에게 영상메시지를 보내 눈길을 끌었지요. 최불암이 이숙을 많이 배려하고 인자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감초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이숙. 2014년에는 전설의 마녀에서 배청자역을 맡아서 열연을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 하기를 바라며, 대중들에게 늘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이국적인 외모가 눈길이 갑니다. 아름다운 외모로 지금과 똑같은 이목구비이네요. 그래서 성형 수술은 안 한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인스타그램은 하지 않는 것 같네요. 항상 개성넘치는 매력과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에서 손녀 남지우를 공개했는데 수려한 외모가 주목을 받았으며 할머니 이숙의 끼를 물려받아 박혜미 극단에서 연기를 한다고 했네요. 또 남편 남현식과는 사별한지 약 23년 정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별 후 우울증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1973년 CBS 기독교방송 공채 성우로 데뷔를 했다고 합니다.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쌍복댁 역으로 오랜기간 출연을 했고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는 소피아 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사극 드라마에서 상궁 캐릭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후 1983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 수상을 하게되었습니다. 가수 활동도 했는데 1982년 1집 앨범을 발매했다고 해요. 명창 고 김소희 선생님을 찾아가 6개월동안 판소리를 배웠고 4집 앨범에는 트로트 가수 '송대관' 참여했네요.
막장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를 보다가 웃다 죽은 캐릭터를 연기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계기로 진짜 '웃찾사' 코너 '따와'에 직접 특별 출연을 했네요. 재치있는 입담과 좋은 예능감도 보여주고 있네요. 그럼 탤런트 이숙에 대해 살펴봤네요.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속에 가려진 아픈 과거, 지금도 남편이 보고 싶다
특유의 호쾌한 웃음을 날리며 시원한 오렌지 주스 한 잔을 건네는 그녀, 현재 서울 잠실 종 합운동장 근처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하 고 있다. 장성한 아들은 일찌감치 결혼해 손자, 손녀까지 안겨줬고 막내딸은 중국에서 유학 중이다. 남편과는 안타깝게도 14년 전 사별해 해마다 명절이면 자식들과 함께 성묘를 간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떴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제가 밖에 나가 워낙 활기차고 센 모습만 보여줘서인지, 사람들은 제가 혼자 사는 여자일 거라고는 쉬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워낙 내색을 안한 탓도 크죠. 자존심 때문인지 남편 없는 여자라는 말은 또 듣기 싫어서 힘들어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답니다.”
14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은 선거에 두 번이나 나갔던, 제법 알려진 정치인이었다. 두 번째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스트레스성 뇌출혈로 세상을 등진 남편은 이숙에게 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멋진 남자였다.
“남편을 중매 반, 연애 반으로 만났는데, 나중에 정치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학창 시절 때 꿈이 여성 정치인이었거든요. 웅변대회 나가면 온갖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고, 또 사람들 앞에 나가서 연설하는 게 좋아 정치 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마침 저랑 꿈이 같은 남자를 만났으니 일종의 대리 만족 같은 걸 느꼈나 봐요. 결혼하자마자 남편은 본 격 선거 운동에 들어갔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정치만 생각하고, 항상 자신보다 는 남을 먼저 챙기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자연 스럽게 존경심이 생겼죠.”
한번은 남편의 선거 운동이 하이라이트를 치달을 때였다. 선거 운동 본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그녀에게 이제 남편 이미지를 봐서라도 파출부나 억척스러운 아줌마 역할은 그만하 면 안 되냐는 부탁을 해 왔단다. ‘그럴 수도 있겠다’며 잠시 고민한 이숙은 얼마 지나지 않 아바로“그럴수는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맡은 배역이 그런 거지, 내가 그런 게 아니잖아요. 또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힘없는 사람들을 부끄러워하면 그 또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길로 바로 남편한테 달려가서 난 지금처럼 쭉 일할 터이니, 당신은 진심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인이 돼라고 충고했죠. 남편도 생 각이 짧았다는 듯 미안해 하며 그 뒤로는 내일을 누구보다 응원해 줬고요.”
주말이면 집으로 찾아오는 남편의 지인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대접하고, 또 촬영이 없는 날은 남편을 도와 선거 운동에 동참했던 이숙은“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남편을 참으로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감회에 젖는다. “그 사람의 장점이면 장점, 단점이면 단점 하나도 다 내 책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싶던 정치, 제대로 한번 해보고 가기나 하지….”
생각지도 못했던 남편의 죽음은 하루아침에 그녀가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를 앗아갔다. 그 누구보다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남편 의 부재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고, 남편이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진 빚은 고스란히 이숙에게로 돌아왔다. 대학생인 아들, 초등학생인 딸을 키우고 생계를 꾸려나갈 생각을 하니 제대로 슬픔에 잠길 여유조차 없었다.
“도저히 이 지옥 같은 현실이 믿겨지지 않아서 방문을 잠가 놓고 아이들 몰래 통곡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남편이 없는데도 지 금껏 이렇게 혼자 잘 살고 있는 것도 신기하기 만 하고요. 겉은 멀쩡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동 안 반 장애인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예요. 한쪽 팔을 잃은 사람처럼 늘 뭔가에 넋을 잃은 채 슬픔을 안으로 삭이면서 하루하 루를 버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