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미배는 1951년 1월 20일 태어납니다. 올해 67살이죠. (가수 이미배 나이).
원래 가수 이미배 나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대학생때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다음에 오랫동안 데뷔하지 않다가 나중에 데뷔했기 때문이죠.
또한, 이미배는 결혼도 굉장히 일찍 하는데, 당시에는 정식으로 데뷔한 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거의 주목을 받지 않습니다.
참고로 가수 이미배 남편은 펜팔로 만나서 결혼하게 됩니다.
이미배: "대학교 3학년 여름부터 러브레터를 받았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두번 왔는데, 그런 연애 편지를 받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미배: "당시 남편이 결핵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편지 내용이 감성적이어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결국 직접 만나기로 결심을 했다."
하지만 이미배가 이혼했다는 루머가 들릴 정도로, 결혼 생활이 이미배에게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죠.
아무튼 그렇게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고, 현재 가수 이미배에게 아들이 있고,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전해지네요.
참고로 이미배가 이혼을 했다, 라는 루머가 들릴 정도로 남편과의 사이는 그리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미배 나이? 남편과 만나지도 않고 결혼? "집안 반대로 가출까지 했다"
그녀는 지금의 남편을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 결혼까지 골인했다.
하지만 이미배의 남편은 당시 이미배와 10개월이나 만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지난 KBS `여유만만`에서 "학교 앞 다방에서 만남을 약속하고 드디어 만났는데 처음 보자마자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남편이 저를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아마 연민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며 "이후 4, 5번 정도 만나다가 어느 날 같이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남편이 프러포즈를 해 받아들였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부모님 반대가 심해 가출까지 해봤다"며 "결국 나중에는 못이기는 척하고 들어갔고 결혼을 허락받았다"라고 밝혔다.
“네, 마침 오늘 저녁 ‘콘서트 7080’ 녹화가 있으니 녹화장에서 뵙죠.”
가수 이미배(64)의 전화 너머 목소리에 압도당해 버렸다.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에는 품격이 스며 있었다. 고상하지만 거만함이 없었고, 지적(知的)이면서도 차갑지 않았다. 한국에서 에디트 피아프 노래를 부른 가수는 흔치 않다. 그 특유의 처절함과 떨림을 누가 흉내 내거나 다른 스타일로 부를 수 있을까. 어느 쪽이든 피아프의 노래를 부른다는 건 모험이다.
가수 이미배는 에디트 피아프 노래를 맛깔나게 부른 가수로 손꼽힌다. 1998년에 낸 7집 ‘욕망’에서 이미배는 피아프 노래 ‘장밋빛 인생(라비앙 로즈)’을 불렀다. 7집을 낼 당시 이미배는 47세로, 피아프가 세상을 떠난 나이와 같다. 이미배가 부르는 ‘장밋빛 인생’은 고상한 허무가 스며 있다. 피아프가 부른 ‘장밋빛 인생’이 새빨간 융단이라면, 이미배가 부른 노래는 검붉은 벨벳을 연상시킨다. 이미배는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도 불렀는데 이 역시 피아프가 부른 노래와 색채가 다르다. 애틋함과 애절함을 걷어버리고 세상사의 희로애락을 초탈한 듯 담담하게 부른다.
이미배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가수는 아니지만 매니아층이 분명하다. 1979년에
‘뱃사공’으로 데뷔한 그는 30년 넘게 무대 위에 섰다. 대표곡으로 ‘당신은 안개였나요’가 있다.
대중적인 무대에는 잘 서지 않지만 가끔 ‘7080콘서트’ ‘열린음악회’에 설 때마다 화제가 된다. 화제의 키워드는 ‘매혹의 보이스’. 한 음악전문가는 이미배의 목소리에 대해 “내가 들어본 가장 지적인 목소리”로 꼽았고, 50대 한 남성은 “비오는 날 술 마실 때 이미배 음반을 찾아 틀곤 했다”고 회상했다.
지난 12월 1일 오후 여의도 KBS 별관 1층 카페에서 이미배를 만났다. 이씨는 자신이 한국의 피아프로 거론되는 것에 부담스러워했다.
“제가 감히 어떻게 피아프와 비교될 수 있겠어요? 피아프 노래는 들을 때마다 감탄해요. ‘어쩌면 저렇게 노래를 처절하게 부를 수 있을까?’ 하고요. 피아프 노래를 부른 사람은 우리나라에 거의 없죠? 그 떨리는 창법에서 나오는 처절한 감성은 누구도 담기 힘들 거예요.”
피아프의 노래를 부르면서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피아프는 피아프, 나는 나”라고 운을 뗐다.
“같은 노래라도 가수에 따라 생명력이 달라지잖아요. 노래는 음정, 박자, 음성이 다가 아니에요. 부르는 사람의 느낌과 내면이 묻어나죠. 피아프 노래는 정말 처절해요. 좋은 노래를 부르려면 행복하면 안 돼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정화해서 부를 때 남에게 위로를 주는 거죠. 평탄한 인생을 산 사람의 노래로 감동을 주기는 힘들어요.”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과 ‘사랑의 찬가’는 모두 비극적인 사랑이 빚어낸 명곡이다. ‘장밋빛 인생’은 여섯 살 연하의 샹송 가수 이브 몽탕과의 열애의 감정을 담아, ‘사랑의 찬가’는 자신을 만나러 오던 중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연인이자 복서 마르셀 세르당을 잃고 나서 피아프가 직접 만든 노래다. 세기의 명곡 뒤에는 피끓는 슬픔이 있었다. 이미배는 “피아프는 사랑을 잃고 노래를 얻었다”고 말했다. 또 “피아프는 사랑을 잃어서 불행했지만, 노래를 얻어서 행복했다”고도 했다.
“피아프처럼 불행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어요. 태어날 때에도 불행했고, 자라면서도 밑바닥 삶을 살았고, 연인과의 사랑은 번번이 깨졌죠. 피아프는 진정한 사랑은 마르셀뿐이었다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피아프는 마르셀의 실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환상 속 마르셀을 사랑했어요. 마르셀이 비극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으로 남은 거죠. 피아프는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려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대체로 집착이 강하거든요.”
초2, 담벼락에 붙어서 들은 ‘장밋빛 인생’
이미배의 노래 인생에 있어 피아프는 특별한 존재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프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동네를 지나는데 한 여자의 노래가 담장 너머로 들렸어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죠. 그 담벽에 붙어서 끝까지 들었어요.”
그때 들은 노래가 바로 ‘장밋빛 인생’이다. 하지만 피아프의 노래는 그에게 너무 멀었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경기여중·고, 연세대를 졸업한 그에게 피아프의 그 처절한 비극적 감성은 딴 나라 얘기였다. 그저 ‘저 여자는 어쩌면 저렇게 노래를 잘할까?’라며 감상하는 데 그쳤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린이합창단으로 활동하고, 1971년 TBC(동양방송) 주최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노래 실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았지만 피아프의 노래를 부를 엄두는 못냈다.
그러다 결혼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스스로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8남매 중 다섯째였던 그는 늘 사랑에 굶주렸다. 애정 권장량이 많은 그에게 8분의 1로 쪼개지는 부모님의 사랑은 그를 외롭게 했다. 스물세 살 때 만난 남자는 자신에게만 오롯한 사랑을 쏟아줄 것으로 보였다. 결혼하기 위해 집을 도망치듯 나왔다. 하지만 철없는 시절에 한 결혼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견디는 심정으로 살아냈다. 그제서야 피아프의 비극적 감성이 와닿기 시작했고, 피아프의 노래를 가슴으로 부를 수 있게 됐다.
비극적 사랑이 피아프에게 세기의 명곡을 선물했듯, 굴곡진 인생이 이미배에게 남다른 감성을 선물했다. 그는 그 감성을 “인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꿋꿋하게 견뎌낸 보약”이라고 말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후회나 아쉬움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사람이 됐잖아요. 인생의 질곡을 몰랐다면 노래가 어려웠을 거예요. 사람은 양(陽)만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음(陰)도 있어야지.”
이미배의 눈빛에서 피아프의 눈빛을 봤다. 이브 몽탕과 열애 당시 함께 찍은 사진 속의 피아프, 영화 ‘라비앙 로즈’에서 피아프를 연기한 마리옹 코티야르, 7집 음반 ‘욕망’의 재킷 사진 속 이미배 얼굴이 겹쳐 보였다. 60대 중반 이미배의 눈빛은 오묘했다. 숱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텅 빈 눈빛이다. 생의 질곡을 굽이굽이 넘어 아름답게 승화한 눈빛이었다. 느낌을 전하자 이미배는 “제가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 조금 다른 삶을 살아서일 거예요. 저는 명예나 이재 같은 데 별 관심이 없어요”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에겐 특별한 애착이나 집착의 대상도 없다고 했다. 단 소박한 바람이 있다. 남은 생 동안 ‘좋은 노래 딱 한 곡’을 하는 것. “‘좋은 노래’란 뭔가?”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세월을 타지 않는 노래, 후세에 길이 남는 노래예요. 대중과 영합하지 않고 제 세계를 지켜나가면서 좋은 노래를 남기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자기만의 색깔로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실력 있는 가수를 대중과 영합하게 해서 고꾸라뜨리는 경우를 많이 봤죠. 품위를 유지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에디트 피아프가 전설적인 가수가 된 데에는 프랑스인의 문화의식이 한몫했어요. 거리의 여자가 가진 재능과 감성을 알아보고 키워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피아프도 없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