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가족사가~이대근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여자하고 섹.스.신.을? '에.로' 이젠 잊어!
이대근, 가족사가~이대근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여자하고 섹.스.신.을? '에.로' 이젠 잊어!
배우 이대근의 가족사가 공개됐다.
이대근은 28일 오전 방송된 SBS '좋은아침'에 출연해 가족과 자신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털어놨다.
자신의 이름 그대로 이대근 역이다. 악극단 인생 40년, 집안 대소사는커녕 자식도 등지고 살아온 아버지를 연기한다.
2남 1녀 자식들은 다 커서 "아버지가 나한테 해 준 게 뭐 있어?"라고 대든다. 아예 연락마저 끊고 산 지 3년. 아내의 제삿날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이대근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젊은 시절, 주먹 하나로 스크린을 평정한 액션스타였던 그는 중년 초입 성(性)에 강한 남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제는 노년 배우로서 코미디 변신이다.
이날 방송에서 이대근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딸만 셋을 낳았는데 막내가 3살 (둘째가)8살 (셋째가)12살 때 미국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에 MC 조형기는 "따님이 청력이 안 좋다고 들었다"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고 이대근은 "그 이야기는 여기선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어 공개된 자료화면 영상에서는 이대근의 첫째 딸과 셋째 딸이 청각장애를 앓게돼 딸들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딸의 미국행을 지원하게 된 사실이 전해졌다.
이밖에도 이대근은 영화 '실록 김두한'을 통해 집을 마련한 사실도 공개했다.
9일 촬영현장에서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여주인공 한혜숙이 "이대근 선생님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듣고 벗는 줄 알았다"고 농담을 하자 이대근이 "사람들이 영화는 보지도 않고 벗었다고 한다.
''뽕''에서 내가 옷을 벗었어? 여자하고 섹스신을 했나? 보지 않고 오해들 하는데 나는 신발 밖에 안 벗었다(웃음)"라며 재치있게 응수했다.
이대근은 또 "당시는 1년에 120편씩 영화가 촬영되던 시대였다. 80편이 나에게 왔다. 그중에서 고른 작품이 그것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변강쇠''다. ''변강쇠''는 해학작품이다.
재주가 좋아도 신분이 낮으면 출세 못한 그런 사회에서 변강쇠가 인권을 얘기했다"고 설명한 뒤 "벗고말고가 배우에게 무슨 상관이 있나? 최인호의 ''영자의 전성시대''를 보면 ''내 몸을 스쳐간 남자들은 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이 명언이라고 생각한다"며 생각을 밝혔다.
최인호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제3의 어머니상을 보여줄 영화로 엄마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다양한 인생의 스펙트럼을 가진 어머니의 모습을 담는다.
“팽팽한 외모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는 조선일보 기자의 질문에 “평생 남의 인생 살아와서 그렇지. 매일매일 욕을 먹고 살아서 그래요. 오늘 TV에 나오면 내일 비판받고, 오늘 극장 걸리면 내일 비판받았으니까. 그래서 나와 싸우는 시간이 많지요.”라고 대답했다. 이대근은 영화판에서 누구보다도 험악한 일을 해온 진짜 ‘노동자’였지만, 그는 내면으로는 ‘귀족’이었다는 사실이 바로 다음의 대담으로 증명된다.
“보톡스 맞는다, 오해받으시겠습니다.”라며 팽팽한 이대근의 외모에 대해 조선일보 기자가 질문하자 “진선미(眞善美)를 이기는 게 귀(貴)예요. 귀할 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아무리 까불어도 엘리자베스 여왕 옆에 서면 식모야, 식모. 이방자 여사도 생전에 얼마나 귀티가 나셨는지, 제아무리 예쁘다는 여배우들도 곁에 서면 단박에 초라해졌지. 화장품만 들이 때린다고, 성형만 한다고 아름다워진다고요? 웃기고 자빠지라고 해. 귀(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을 뿐더러 마음에서 우러나야지요. 아무리 젊고 예뻐도 그가 가진 생각과 철학이 엉터리이면 결코 귀해질 수 없어요. 차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 안 든다고.”라고 일갈했다.
이대근은 젊음의 비결에 대해 “내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게 노력해요. 마음을 늘 백지 상태로 두려고 애를 써요. 아직도 생선 대가리 칼로 내리치는 걸 못 봐요.”라고 대답을 했고, “뜻밖입니다. 이대근이란 이름은 거칠고 용감한 남성성의 상징인데”라고 질문하자 “스타란 그 시대가 지어준 이름에 불과하지요.”라고 응답했다. 인터뷰 자체가 영화처럼 역전극이다.
“300편 영화 중에 대표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인호 소설에 '내 몸을 스쳐간 모든 사람은 다 아름답기만 하다'라는 말이 있어요. 모든 작품이 내겐 다 아름답고, 작품 속 인물이 모두 나보다 훌륭하지요. 그래도 꼭 이야기하라면 액션에서는 '김두한' 시리즈, '시라소니 1·2' '거지왕 김춘삼' '제3부두 고슴도치' 정도. 사극으로는 '연산군'이고, 향토물에서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심봤다' '뽕'. 아, '감자'도 있네.”라고 대답했다.
“(변강쇠를 괜찮은 작품에 안 꼽자) 배우 이대근이 변강쇠 이미지로 각인된 게 싫은가요?”라는 질문에 “싫은 게 아니라, 그런 인식이 굉장히 오래가고 있다는 게 웃긴 거지. 변강쇠를 문학이 아니라 에로티시즘으로 보는 한국 사회는 정말 무식해. 판소리 열두마당 중 하나인 변강쇠전은 당시 위정자와 양반들의 위선, 문란한 성문화를 꼬집고 비판한 풍자 해학극이에요. 변강쇠의 아랫도리가 유난히 큰 건 일종의 불구를 상징한다고. 인권이야. 옹녀도 제도권에서 버림받은 여자예요. 그 둘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산중에 들어가 가족을 일구려고 발버둥치지. 마지막 장면에 변강쇠가 장승을 붙들고 막 싸우잖아요? 결국엔 장승을 도끼로 찍어 불태우고. 장승은 곧 제도를 의미한다고요.”라고 대답했다.
영화계의 좌익화를 비판한 이대근은 위의 대답에서 굉장한 개혁의식을 그러낸 것이다. “이대근이 강수연과 열연한 영화 ‘연산군’(1987년). ―영화를 그렇게 이해하는 대중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이대근은 “해학이 뭔지도 모르고 그런 소리들 하지요. 영화 한번 봐봐. 내가 윗도리 벗고 뭐했나. 어떻게 그게 섹스물인가. 타락의 시대라 그래요. 비아그라가 판을 치고, 남자의 정력이 세면 좋다고 하고. 병신 같은 세상이지. 여자를 어떻게 아랫도리로 잡습니까. 남자의 넥타이가 뭘 상징하는 줄 알아요? 뱀이야. 혁대도 뱀을 상징하지. 정력을 아래에서 한 번 묶고, 목에서 한 번 묶어야 이성을 갖게 돼요. 사랑은 이성으로 하는 거라고.”라고 대답했다.
영화 '뽕'에 대해서는 “나도향의 원작을 가지고 만들었으니까. 김동리 등 당시는 모두 한(恨)의 작품이야. 그런데 무식한 사람들이 뽕도 에로티시즘이라는 거지. 명작이라고는 읽어보지도 않은 거야. 반항하면 죽고, 저항하면 병신 되던 일제시대의 한을 담은 거예요 그게.”라고 대답했다. “이대근은 마초입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내는 여자를 보호하고 책임질 능력이 있어야 하고, 여인은 그 남자를 받아주고 위로하고 아이처럼 보살펴야 아름답지.”라고 대답했다.
“대역을 쓰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라는 질문에 “우리 때 액션은 작품이었어요. 목숨을 건 진짜였지. 유리도 뚫고 지나가고, 낭떠러지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바다에도 뛰어들고. 주먹 신도 상대의 주먹이 날아오기 한참 전에 피하면 폼이 안 나요. 코앞을 스치기 직전에 날쌔게 피해서 한 방을 날려야 그림이 예쁘지. 그게 이대근의 원투 스트레이트야. 요즘처럼 마구잡이로 잔인한 거만 보여준다고 액션이 아니라고.”고 대답했다.
“강인한 체력, 남성성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으신 모양입니다”라는 질문에 “자유당 시절 대한청년단 간부로 활동하실 만큼 악질 건달을 다스리는 공포의 건달이었죠(웃음). 내가 무녀독남인데, 어릴 때부터 태권도, 복싱, 레슬링, 기계체조를 섭렵했어요. 날아다녔지. 고등학교 때는 트럼펫을 배워서 군 복무할 때 국립묘지 초대 나팔수로 진혼곡도 많이 연주했어요. 제대한 뒤 아현동 시장에서 아버지의 야채 장사를 거들면서 시장 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고 배운 게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됐지요.”라고 주장했다.
“전성기가 지난 뒤에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에서 간부로 활동하셨지요.”라는 질문에 “내가 이승만 정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을 다 겪었는데, 그 사이 우리 영화계에도 좌파 우파가 생겨납디다. 좌파, 좋지요. 비판할 수 있어. 그런데 극좌는 안 돼요. 이게 선배고 뭐고가 없어. 저희끼리 똘똘 뭉쳐서 영화진흥기금 다 해먹고, 자기네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화도 못 하게 해요. 그 돈 가지고 전부 좌파 영화 만들었잖아요? 수익금으로 정치자금 만들고. '바다이야기' 총책이 누구예요? 예술가는 그렇게 살면 안 돼요. 타협하면 안 된다고. 열흘 보는 꽃이 없고 3대 가는 부자 없어요. 영화는 커피 팔듯 하는 산업이 아니에요. 정신 산업이라고.”고 대답했다.
“요즘 젊은 영화인들 보면서 어떤 생각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중이 승복을 입었다고 해서 다 중이 아니에요. 꽃미남이 다 뭐예요? 하룻밤을 자더라도 목숨을 걸고 싶은 남자여야 매력적이지. 안 그래요? 무엇보다 철학이 없어. 그 시대를 직시하면서도 멀리 보는 눈이 있어야 예술인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원조 이거기 아빠르는 이대근은 “그래도 세 딸을 미국에서 훌륭하게 키우셨지요. 큰딸, 둘째 딸은 약학 박사로 FDA 고위 관료라고 하던데요.”라는 질문에 “큰딸이 미국식품의약국(FDA) 14급 공무원이에요. 15급이 장관이니까 차관쯤 되는 거죠. 딸들을 아내가 아주 엄하게 키웠어요. TV는 두드려야 나올 정도로 고물을 가져다놓고 그나마 하루에 1시간 이상 안 보여줬어요. 자명종 놓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하고, 늦잠 자면 학교를 아예 안 보내요. 미국에서도 회초리 들고 키웠어요. 하루 4시간 이상 못 자게 해서 박사학위 따게 한 셈이지요(웃음).”라고 대답했다.
“절대로 내 딸들을 배신하지 마라, 책임져라, 보호 관리하라 다짐을 받았지요. 그거 못 하면 사내가 아니야.”라고 사위들에게 말했다는 이대근은 “나보다 공부 잘했으니 머슴처럼 섬겨야지.(웃음) 떨어져 있어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통화해요. 별일 없나? 나는 잘 있으니 오케이. 애들 전화 왔나? 오케이. 사랑은 정지하면 안 된다고 아까 얘기했지요? 와이프는 내가 모자라는 게 많은 남자라는 걸 알아요. 나는 영화 한 가지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른다고. 자동차 오일 가는 것도 모르고 사기도 많이 당하고. 하지만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아내는 알아요. 불현듯 가족이 그리워지면 바로 비행기표 끊어 워싱턴으로 날아가는데,